스포츠중계에서 해설자의 존재는 한때 절대적이었다. 경기의 흐름을 읽고, 선수의 움직임을 설명하며, 관중이 미처 보지 못한 장면을 짚어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실시간 데이터가 화면을 가득 메우고, SNS 댓글과 팬 스포츠중계 커뮤니티가 경기 해석을 대신한다. 이제는 누구나 전문가처럼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로 해설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걸까.
팬들의 첫 반응은 단순하다. “굳이?”라는 말. 화면 아래에는 이미 타율, 패스 성공률, 슈팅 거리, xG 수치가 실시간으로 뜨고, 중계 플랫폼에는 팬 해설까지 붙는다. 해외축구중계에서 손흥민이 공을 잡는 순간, 수많은 시청자들이 동시에 분석을 쏟아낸다. “지금은 왼쪽으로 전환해야 해.” “수비 라인 낮춰야 해.” 이런 말들은 해설의 역할을 일부 대체한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해설의 진짜 가치가 드러난다.
경기 중계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방송이 아니다. 감정의 통역이다. 숫자와 데이터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흐름이 존재한다. 야구중계에서 투수가 던지는 한 공에 담긴 망설임, 농구중계에서 마지막 타임아웃 직후의 표정, 그 작은 흔들림을 언어로 정리하는 사람은 여전히 해설자뿐이다. 팬들이 중계 데이터를 통해 예측할 수는 있어도, 감정의 방향을 설명할 수 있는 건 인간의 언어뿐이다.
특히 해외리그 중계에서는 언어적 맥락이 중요하다. 프리미어리그 해설자들은 단순히 기술적인 해설을 하지 않는다. 선수의 성장 배경, 과거 인터뷰, 팀 내부 분위기까지 곁들여서 시청자의 감정을 끌어올린다. 이건 데이터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스포츠는 결국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팬이 ‘경기’를 보는 이유는 통계보다 ‘서사’를 느끼기 위해서다.
문제는 해설자가 이 변화를 얼마나 이해하느냐다.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이건 잘못된 판단입니다”라고 단정하는 시대는 지났다. 현대 스포츠중계의 해설은 관객과 대화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팬들은 자신이 보고 있는 화면에 대한 의견을 이미 갖고 있고, 해설자는 그 의견을 존중하며 대화하듯 설명해야 한다. 해설의 언어는 점점 ‘진단’보다 ‘공감’에 가까워지고 있다.
프로야구중계에서도 이런 변화는 뚜렷하다. KBO 중계에선 과거엔 감독 시점의 설명이 중심이었다면, 요즘은 “팬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설명”이 중요해졌다. 한 타구에 담긴 긴장감, 벤치의 분위기, 경기 외적인 맥락이 모두 해설의 일부가 된다. 이러한 접근은 중계의 깊이를 더하고, 팬들이 ‘단순 시청자’에서 ‘참여자’로 바뀌는 과정을 완성한다.
스포츠중계의 해설은 이제 데이터와 감정, 사실과 해석 사이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한다. 화면 위에는 여전히 수치들이 쏟아지지만, 그 수치를 ‘이야기’로 만드는 건 사람이다. 팬들은 알고 싶어 한다. 왜 그 선수가 그 순간에 멈췄는지, 왜 그 팀이 마지막에 다른 선택을 했는지. 그 이유를 만들어주는 사람이 바로 스포츠중계 해설자다.
결국 해설은 사라지는 직업이 아니라, 진화하는 직업이다.
예전의 해설이 ‘결과를 설명’했다면, 지금의 해설은 ‘감정을 번역’한다.
AI 분석이 아무리 정교해도, 한 명의 해설자가 경기의 공기를 읽고,
그 공기를 시청자의 언어로 옮기는 순간만큼은 대체될 수 없다.
스포츠는 숫자로 움직이지만, 감정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해설자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는 경기를 해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팬의 감정을 정리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